나의 이야기

나의 삶

사랑해요 대한민국 2013. 12. 12. 13:36

저희 집안은 아빠, 엄마, 오빠, 저 이렇게 네 식구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초등학교 4학년이 막 끝날 무렵 추락 사고로 인하여 척추와 다리를 쓸 수 없는 하반신 마비라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이 대단했고, 어릴 때부터 안 해본 것이 없는 듯 합니다. 빨래며 설거지며, 도시락 싸가는 것 까지.. 밥을 하는 일까지... 엄마가 해야 할 일들을 저는 어려서부터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저의 삶이었고 힘들었지만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 온 저 입니다. 아버지는 1년이 넘도록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그동안 병원비도 엄청 들어갔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1년이 좀 지난 뒤 아버지는 퇴원을 하셨고.. 장애 2급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다행이도 한쪽 발은 힘을 줄 수 있었지만 하반신 마비이기 때문에 대소변 감각을 모르고 여태 살고 계십니다. 사고에 의한 충격에서 몸이 불편하셔서 인지 아버지는 집에만 계셨고... 처음 퇴원해서는 사람들 만나는 것조차 꺼려하시고 세상과의 단절을 하신 듯 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고...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집에만 계시고 경제적 부담을 엄마가 다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엄마는 몸도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셨고... 저는 엄마의 부담을 덜어 들이고 싶어서 그리고 정말 실용성 있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컴퓨터를 전공한 저는 고등학교 생활이 배우는 입장에서 만족을 주었고 아직도 탁월한 선택 이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을 사귀는데 있어서 많이 힘들었고 저와 마음이 맞는 친구를 찾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3년동안 편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기에 반에서 1등도 해보고 성적도 어느 정도 잘나오고... 실업계 고등학교를 선택하면서도 대학을 안가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은 없습니다.

  내신성적이 뒷받침 되어준 저는 단국대학교를 진학하게 되었고, 수시로 입학을 하여 너무나 기뻐하며 여태껏 겪어온 어려움과 힘든점 을 대학교 합격을 통해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도록 도와 준 선물이라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집에 계셨던 10년 동안에 또 오빠의 사고가 있었습니다. 오빠 또한 대수술을 3번이나 받고... 다행히도 오빠는 다리가 불편하긴 하지만 장애 판정을 받을 만큼은 아니였고.. 지금은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들어간 수술비 또한 만만치 않았기에 어머니께서 큰 부담을 안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저는 경제적으로 뒷받침 해주지 못할 시에는 포기하거나 나중에 기회를 노리는 그렇게 생각을 바꾸며 제 자신을 컨트롤 해가며 저보다 더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아주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제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가며 힘든 것을 이겨내고 헤쳐 나왔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께서 일을 시작하게 되신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2년에서 3년 정도.. 경제적으로 많이 벌지는 못하더라도 사회생활을 하시게 되고 자신감을 찾으신 아버지를 보면서 너무나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단점으로는 돈을 모으기만 하시지 제대로 쓰실 줄은 모르시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정말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라고 하시는데 그 기준이 아버지만의 기준인거 같아 아버지를 설득시키는데 꽤 힘든 게 사실입니다. 대학교 등록금은 어떻게라도 대 주시지만 한 학기에 400만원이라는 큰 돈은 아버지께서도 버거운 게 사실일 것입니다. 저희 집은 집이 있지만 그것도 사고가 나기 전 에 장만해 놓았던 저희 집의 재산이며 자산에 속합니다. 아버지께서 건강한 몸이 아니시므로 언제 어디서 갑자기 또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살고 있고... 그래서 여전히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저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제가 열심히 하면 금방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 대학생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자그마한 사업을 하나 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자유롭고 싶고.. 부모님께 손 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리고 부모님을 설득 시키는데 너무나 힘듦이 많이 따랐기에.. 결정적인 이유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경제적인 이유 하나 때문에 조금씩 포기하고 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뤄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결심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현재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모아 온 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한 돈이었으나.. 문득 유럽여행을 갈 목돈이 모아지자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돈으로 유럽여행을 갈 수는 있지만 그 후로 저의 경제적인 능력은 제로 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였고... 현재 일본식 문어빵인 다코야끼 팔고 있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너무나 심했기에 그로 인한 상처도 너무나 깊었지만 저는 저의 소신 것 추진력 있게 나아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공부 열심히 해라.. 그것이 돈 버는 일이다 라고 이야기 하셨지만...

  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있을때 정말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바쳤을 뿐이므로 전공에 대한 지식이 낮은 상황이고 아직 저의 목표를 찾지 못한 듯 합니다. 그런 제가 공부는 잘 하고 싶지만 열심히 하고 싶지만 그것이 맘먹은 데로 쉽게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공통수학만 배운 터라 어려움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또한 저희 학교는 건축공학과에서 구조 쪽을 열심히 하는 터라 저에겐 힘들고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그런 상황이 였습니다. 1학년 때는 학교를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할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고.. 건축이라는 것은 꼭 수학을 풀고 구조 쪽이 다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과 여러 가지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직 목표를 찾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야기가 다른 길로 빠진 듯 한데요.... 서두 없이 이야기 한 것 같아 제 맘을 이해하실지 는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저는 앞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 앞으로 유학이 될 수도 있고 대학원 진학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미래의 상황을 생각하여..    

  지금 조금 고생이고 힘들지만.. 일을 벌리고 장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요새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다코야끼 라는 문어빵 은 불로 굽는 요리이기 때문에.. 가만이 있어도 더운 현재 날씨에는 불가능 하다 생각되어 방학 동안 조금 쉬고 있구요.. 영어 공부를 혼자 하려고 하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기회가 되어 동사무소에서 배워 볼 생각이구요... 방학동안 운동 열심히 하고 여행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으며 이번 여름 방학은 그렇게 지내려 합니다. 성당일도 참여하며 봉사 두 하구요...
  이 짧은 글로 저의 집의 사정을 다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저의 마음 또한 모두 전달되지는 못하겠지요. 하지만 작은 장학금을 통하여 제가 자신감을 얻고 열심히 공부하는 계기가 된다면 앞으로 못 할 것이 없을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은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부족한 저를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시는 그리고 저를 도와주려고 하는 모든 분들께 제가 되지 않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을 시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저는 꿋꿋이 살아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 합니다.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은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2004년 여름 어느날.. 장학생의 추천을 받아 승화가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써나간 글...